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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진짜 서비스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생성일
2026/01/13 13:20
태그

교실을 '스타트업 실험실'로 바꾼 학생 주도 코딩 동아리 이야기

학생의 질문에 "안 된다" 대신 "지원해 줄게"라고 답했을 때 일어난 일

학교 현장에서 '학생 주도'라는 말은 때로 이상적인 구호처럼 들리곤 합니다. 하지만 2025학년도, 우리 학교 컴퓨터 동아리실에서 목격한 장면들은 그 단어가 가진 진짜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교사가 가르치고 학생이 배우는 익숙한 풍경 대신, 학생이 강단에 서고 교사는 그들의 서포터가 되었을 때, 교실은 배움의 공간을 넘어 '작은 창업 실험실'로 변모했습니다. 그 뜨거웠던 1년의 기록을 선생님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학생이 방향을 정하는 동아리

우리 학교의 동아리는 정규 교육과정 안에 있지만, 활동의 키(Key)는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 쥐고 있습니다.
그해의 동아리 반장이 누구냐에 따라 앱을 만들기도, 로봇을 다루기도 합니다.
2025학년도, 우리 동아리는 '학생이 가르치고, 학생이 만드는' 진짜 배움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프로젝트 할 수 있습니다!": 또래가 이끄는 배움의 시작

학기 초, 동아리 반장은 직접 준비한 파이썬 기초 자료를 들고 친구들 앞에 섰습니다. "이 정도만 알면 우리도 충분히 프로젝트 할 수 있습니다!"
반장은 자신이 먼저 익힌 내용을 친구들에게 나누며 1학기를 이끌었습니다. 교사의 지시가 아닌 친구의 격려는 동아리원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그 자신감은 2학기에 "각자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으로 이어졌습니다. 웹 페이지, 데이터 분석, 게임 개발 등 동아리원들은 각자의 관심사를 코드로 구현하기 시작했고, 교사와 반장, 부반장은 동아리원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멘토링하며 러닝메이트가 되어주었습니다.
아래는 동아리원들이 개별 혹은 팀 프로젝트로 완성한 프로젝트의 QR코드입니다.

기회를 연결하다: 교육청 지원 사업과의 만남

사실 이 모든 활동의 중심에 있던 반장 학생은, 학기 초 저에게 조심스러운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 제가 생성형 인공지능(ChatGPT) API를 써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은데... 비용 때문에 학교에서 지원받을 방법이 없을까요?"
학생의 눈빛에서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열정이 보였습니다. 저는 마침 교육청에서 받은 공문인 'AISW 꿈키움 동아리 지원 사업'을 떠올렸습니다. "그럼, 이 사업에 한번 지원해 보는 게 어떻겠니?"
학생은 직접 계획서를 작성했고, 우리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수정하여 교육청에 제출했습니다.
결과는 선정.
200만 원의 예산을 지원받게 된 학생은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걸로 제가 상상만 했던 서비스를 진짜로 만들어볼게요."

'시지프 신화': 고등학생이 쏘아 올린 개인 위키 서비스

그렇게 탄생한 서비스의 이름은 '시지프 신화(Sisyphus Myth)'입니다. 끝없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했던 신화 속 시지프처럼, '공부는 끝없이 쓰고 정리하는 과정'이라는 철학을 담은 개인 위키(Wiki) 서비스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놀랍게도 기획부터 개발, 배포까지 학생 혼자서 3개월 만에 완성했습니다.
자동화된 기록: 글을 쓰면 AI가 문단을 나누고, 저장 버튼 없이도 서버에 자동 저장됩니다.
끊김 없는 경험: 학생은 "공부한 흔적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쌓이는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교실 칠판에 그려진 '아키텍처': 단순 코딩을 넘어 시스템을 설계하다

서비스의 겉모습보다 저를 더 놀라게 한 것은 학생이 설계한 서버 구조였습니다.
동아리 활동 중간 발표 시간에 학생은 칠판에 Redis와 MySQL의 구조를 그려가며 설명했습니다. "메모리 서버(Redis)가 먼저 데이터를 받아야 메인 서버가 덜 힘들어요. 그리고 나중에 DB로 넘기면 돼요."
학생은 단순히 기능이 작동하는 것을 넘어, "사람이 늘어나도 멈추지 않는 구조"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데이터 보호: 브라우저가 꺼져도 글이 날아가지 않도록 Redis 임시 저장
실시간 동기화: WebSocket을 통한 서버 통신
클라우드 배포: AWS ECS와 Docker를 활용한 전문적인 서버 환경 구축
누가 시킨 것도, 성적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진짜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교실을 작은 IT 기업의 개발실처럼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치며: "아직 이르다" 대신 "한번 해보자"

이번 프로젝트는 한 학생의 진로 희망과 교육청의 지원, 그리고 학교의 자율적인 분위기가 만나 빚어낸 '작은 창업 실험'이었습니다.
교실 안에는 '미래의 개발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개발자가 되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엉뚱하거나 벅차 보이는 아이디어를 가져왔을 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말은 "그건 학생 수준에서 어렵다"는 걱정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럼, 학교에서 한번 해보자. 선생님이 도와줄게."
이 한마디가 아이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가장 큰 서버(Server)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