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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2022개정 교육과정 교과서 집필

생성일
2025/03/15 06:18
태그
#펭귄쌤
#정보
#소프트웨어와생활
안녕하세요, 펭귄쌤 입니다.
저는 2022개정 교육과정 교과서 집필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정보쿠키에 들어오시는 정보선생님들, 그리고 타교과 선생님들 모두 교과서 집필에 관심이 많으실 텐데요. 간단하게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에 대해 과정 및 후기를 최대한 자세하게 써 보려고 해요.
다음 개정 교육과정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참고하셔서 현명한 결정(?) 하시길 바랍니다.

상상과 달리 매우 힘듭니다.

먼저 주의사항입니다. 교과서 집필은 매우 힘든 작업이고, 이 과정이 쉬웠다는 분들을 본 적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과서는 ‘학생들이 해당 과목의 기초를 닦기 위해’ 만들어지는 책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단행본과는 다르게 제약조건도 많고, 쓰다 보면 내가 처음에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책이 나올 수도 있어요. 그래서 너무 이상을 갖고 접근하기보다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과정이다 생각하시면 좋아요.

교과서 집필진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새 개정교육과정의 윤곽이 나오기 전, 여러 출판사에서 미리 교과서 집필진 섭외에 들어갑니다. 저 같은 경우는 연구회 활동이 계기가 되어, 같은 연구회 소속의 선생님 제안을 받아 00출판사의 집필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중학교 정보 교과서, 고등학교 소프트웨어와 생활 교과서 저자가 되었습니다.
대기업 공채마냥 ‘쓰실 분 구합니다.’ 하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일이 빠르게 진행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교과 연구회 활동이 필수 요소는 아닙니다. 대학교 후배들 보니까,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알음알음 소개해서 팀을 구성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보통 이런 경우 출신학교의 교수님이 대표 저자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정말 다음 개정 교과서의 저자가 되고 싶다면, 지금부터 전략적으로 움직이시는 것도 좋습니다. 교과연구회에서 두각을 보이며 활동하거나, 2022개정 교육과정 대표 저자로 들어간 교수님께 미리 컨택을 하거나, 대학원을 가거나… 본인의 사정에 맞게 전략을 잘 짜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있는다고 그냥 누가 불러서 나를 저자로 갑자기 만들어 주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이왕이면 많은 선생님들에게 어필할 좋은 교과서를 만들어야 점유율이 높아지고 인세가 많이 들어오겠죠. 그래서 친한 대학 동기들을 불러모은다 하더라도 ‘잘 쓸 것 같은 동기’를 부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잘 파악하시고 상황에 맞게 행동하시길 추천합니다.

쓰는 과정은 어떠한가?

출판사마다 일을 진행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쓰는 내용은 참고사항으로만 봐주세요. 대형 출판사와 중소 출판사의 프로세스가 좀 다르기도 해서, 막상 집필진으로 들어가시면 많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기본적으로 새 교육과정이 고시되었을 때 교육과정 분석 회의를 많이 합니다.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각 교과목별로 성취기준 및 해설을 뜯어보면서 ‘대체 이건 어떤 의도로 작성된 것일까?’ 고민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가령 이번에 정보교과를 예로 들면 15개정 4단원의 컴퓨팅 시스템이 22개정에서 1단원으로 옮겨졌잖아요. 이런 것들도 ‘어떤 의도에서 이렇게 집필한 것일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우리가 계속 고민한다고 해서 그분들의 의도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국가수준 교육과정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써내려가야만 교과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새로 만들어진 과목의 경우는 ‘내가 쓰는 것이 곧 정답’이 되어버리긴 하는데,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에 정말 머리가 아픕니다.
제가 딱 두 권 썼는데, 중학교 정보랑 고등학교 소프트웨어와 생활 중 뭐가 어려웠냐고 물어보신다면 레퍼런스 자체가 없는 고등학교 소생이 훨씬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내년부터 교과서 선정 시 고등학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소프트웨어 생활 교과서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을텐데요. 교과서마다 저자들의 해석이 다 달라서 천차만별인 모습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출판사가 제시하는 대략적인 일정에 따라 원고를 작업하고, 회의하고, 초판이 나오면 수정하고, 교과서 심사를 받고, 인정(정보교과는 검정 교과서가 없어요) 도서가 되면 교과서 저자가 되신 겁니다.

+ 혹시라도 떨어지면 마음이 아픕니다

교과서 집필진으로 들어갈 정도면 동교과 교사들 중에서도 실력 있는 선생님들입니다. 그런데 심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노력했다고 다 붙여주는 시스템’이 아니더라고요. 정말 마지막까지 떨어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떨어지면 그 동안의 회의, 나의 모든 노고가 허사로 돌아가는 일이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가 매우 극심합니다. 머리 많이 빠졌습니다.
막판이 되면 출판사 담당자도 매우매우 고생을 많이 하고, 선생님도 끝까지 눈에 불을 켜고 잘못된 개념이 없는지 등등을 살펴보셔야 합니다. 솔직히 저도 중학교 정보는 자신이 있었는데 소프트웨어와 생활은 떨어지지 않을까 너무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다행히 둘 다 합격했지만 발표 전까지 피말립니다.
여담이지만… 교과서 선정 시즌에 2022개정 교육과정 1학년 수학이 수학1, 수학2로 나오는데, 한 학기 교과서만 붙은 출판사를 보면서 타교과인 저도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보통 1, 2 모두 같은 출판사의 교과서를 고르잖아요. 이렇게 합격했다 해도, 과목 특성상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교과서 저자가 되면 좋은 거 있나요?

명예를 얻습니다.

저는 사실 교과서 집필 전후로 제 위치가 드라마틱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지 못 하고 있습니다만, 가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등을 통해 같은 정보교사분들과 소통하다 보면, 교과서 저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 기초 체급을 갖추었다.’고 인정해 주시더라고요.
아무래도 경쟁자가 많고 인력풀이 넓은 국어, 영어, 수학 등의 주요 교과에서는 교과서 저자로 등록되는 것이 꽤 큰 명예로 받아들여지는 듯 합니다. 실제로 이런 교과들에선 교과서 저자로 섭외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많이 팔리고, 적게 팔리고를 떠나서 인정 도서가 되는 그 험난한 과정을 거쳐, 인정 도서가 되면 정말 그 날만큼은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그 동안 고생했던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부수입도 들어옵니다.

많이 팔리면 당연히 인세가 들어오겠죠? 당연히 같이 고생한 저자들과 1/n으로 나눠 갖고요. 물론 얼마나 교과서가 많이 채택되느냐, 수익 배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매우매우 많이 달라질 수 있어요.
아직 인세를 받지는 못 한 상황이지만, 그런 부수입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새롭게 배워가는 것이 많습니다.

I know that I know nothing / 소크라테스
중학교 정보 수업을 5년간 하면서 나는 어느 정도 잘 하고 있어~ 라는 자만심에 빠져 지냈던 적도 있는데, 막상 교과서 집필 작업에 들어가면서 ‘I have nothing’이란 휘트니 휴스턴의 곡이 머릿속에 시도 때도 없이 맴돌았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지식은 그저 학교 안에서 보통의 중학생들한테만 유효한 우주의 먼지같은 수준이었고, 수정에 수정을 거치고 머리를 쥐어짜며… 계속되는 내 지적 능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성균관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물론 대학원에 오면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시도 때도 없이 깨닫게 됩니다).
이것저것 공부하면서 교과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에 대해 교과서 이상으로 더 깊게 알게 되고(글을 쓰려면 당연히… 교과서 내용보다 더 많은 걸 알아야겠죠), 같이 집필에 참여한 저자분들로부터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 배우는 것들이 많습니다.
쓰기 전과 쓴 후를 비교해 보면 제 교과 지식 수준은 매우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하라면 하실 건가요?

아무래도 한 번 저자로 이름을 올린 상황이기 때문에, 제가 교직에 오래 있다면 다음에도 동일 출판사 혹은 타 출판사로부터 제안이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 때 제 상황에 맞게 결정할 것 같아요.
선생님들마다 궁금해하는 게 각자 달라서, 모든 질문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는 않으셨겠지만,
최대한 그 동안 받았던 질문, 주변 선생님들의 반응 등을 고려해서 많은 내용을 전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앞으로의 교직 경력을 이어나가시는 데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